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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기업들이 교육할인을 제공하는 이유

두괄식, 천년을 뛰어넘는 생존 전략

제목을 보면 마케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만, 이 글은 할인이 모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글이 아니다. 이 글은 2천년이 넘었다고 알려진 세 문장을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워서 적절한 때에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먼 데서 찾아오는 친구가 있으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

인부지불온 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남들이 몰라줘도 빡치지 않으면 또한 멋진 사람이지 않은가?

논어 학이편

공자는 2500년 전에 태어났다가 죽은 사람이다. 하지만 여전히 공자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그들의 말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테크기업들이 교육할인을 제공하는 것이 그 이유다. 그리고 바로 이 세 문장에 그 이유가 분명히 숨어 있다.

논어는 공자 사후에 공자의 제자들이 그의 말과 사상을 모아서 펴낸 책으로 여겨진다. 사실 논어에 담긴 글이 공자가 직접 한 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논어라는 책이 25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해져 오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아주 오래된 책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는 사실이다.

싸이월드도 5년을 가지 못했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업도 200년을 넘는 곳이 드물다. 서비스나 기업도 몇 년을 넘기기 힘든데, 책 한 권이 2500년을 살아남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실만으로도 고전이라고 불리는 무언가는 들여다볼만한 가치가 있다.

문제는 그것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할 때, 도저히 끝까지 보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아마 2천 년 전에 지금 고전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분명히 이 점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책 자체가 귀했다. 아마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자동차 한대 값은 되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자동차도 없었지만.

책은 귀하고, 책은 오래 전하기 힘들며, 책을 끝까지 읽는 사람은 더 드물다. 당신이 책을 쓰거나 만드는 사람이고, 이 사실들을 모두 알고 있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 뿐이다. 그것은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두괄식으로, 맨 앞에 쓰는 것이다.

서두에 제시한 세 문장이, 바로 논어의 가장 맨 앞에 쓰인 내용이다.

사상을 전파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

사람들이 입수하기도 힘들고, 언제 사라지거나 잊혀질지도 모르고, 설령 읽히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 끝에 도달하기 힘든 책이라면 가장 중요한 말은 당연히 맨 앞에 쓰여야 한다. 물론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사실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가장 앞에 쓰인 것이 가장 명료하게 남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우리는 논어라는 책을 쓰는 (아마도 공자 제자들이었을)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공자는 생전에 여러가지 말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딱 봐도, 논어에 담긴 여러 글은 시간 순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다. 논어의 저자는 공자가 했던 말들 중에 의미있는 것들, 꼭 필요한 것들만 골라담았을 것이다.

그럼 뭐가 가장 중요했을까? 공자가 했던 말, 혹은 공자 제자들이 세상에 널리 퍼뜨리고 싶었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윤리 수업을 열심히 들은 사람이라면 아마 "인(仁, 어질다)"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논어의 첫 번째 문장은 위에서 본 것처럼 "학습하니까 좋더라"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논어에서 공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치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배우니까 좋아, 친구 와서 좋아, 몰라줘도 괜찮아" 뭐 이런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논어는 공자의 사상에 관한 책이다. 사상의 목적은 그것을 통해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나 자신도 변화시키기 어려운데, 대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것도 말로만?

공자의 제자들은 "인이 최고다"라는 뻔한 말이 아니라, "이게 좋던데...?"라는 이른바 넛지 전략을 사용했다. 결과를 놓고 보면 그것은 꽤나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논어의 진짜 성공 비결은 가치 있는 내용을 질문 형식으로 제시하는 첫 문장의 형식적인 구성에 있지 않다.

만약 당신이 어떤 사상의 추종자라면, 그 사상의 정수가 담긴 책의 맨 앞에서 어떤 내용을 기대할까? 혹은 저자나 편집자의 입장에서 사상서의 맨 앞에는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까? 답은 금방 나온다. "무엇을 하라"는 행동강령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들은 그걸 왜 하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인"은 그 행동을 통해 얻게 되는 결과일 뿐이다.

한마디로 논어 학이편은 논어를 처음 읽는 사람에게는 넛지를 통해서 변화를 유도하고, 그 추종자에게는 대놓고 무언가를 지시하는 공자 사상의 핵심적인 지령이다.

세 문장을 관통하는 단어, "또한"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대체 테크기업이 교육할인을 제공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 대체 왜 논어를 들먹이는 것인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당신의 그 의문에 답을 하고도 남을만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내가 분명히 약속을 드리겠으니, 조금만 참아주시면 좋겠다.

우선 교육할인이 존재하는 이유를 파헤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논어 학이편 세 문장의 내용을 다시 뜯어보자. 한 가지 힌트는 "또한"이라는 단어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워서 적절한 때에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먼 데서 찾아오는 친구가 있으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

인부지불온 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남들이 몰라줘도 빡치지 않으면 또한 멋진 사람이지 않은가?

이 세 문장은 얼핏 보면 세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 문장 각각에서 주제를 뽑아내자면 학습, 친구, 쿨한 태도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원문의 문장 구성에는 반복되는 운율, 그러니까 팝송으로 치면 번역하지 않은 원래 영어 가사에서 느낄 수 있는 '롸임'이 있다.

운율은 다른 것처럼 보이는 문장이나 단어가 사실은 한 가지 주제로 연결되어 있고, 1절과 2절의 가사 내용이 다른 듯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다. 논어의 첫 세 문장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또한(亦)이라는 글자다.

또, 라는 말은 보통 같은 이야기를 두 번째 할 때부터 나온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세 문장에서는 첫 번째 구절에서부터 "또한"이 등장한다. 왜일까?

만약 첫 번째 구절에 "또한"이 없다면 이 세 문장에서 첫 번째 문장은 나머지 두 문장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A하니까 B하더라, C하니까 또한 D하더라, E하니까 또한 F하더라"라면 첫 번재 문장은 뒤의 두 문장과는 조금 동떨어진 느낌을 주면서 의미상으로 다른 두 문장을 이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만약 맨 앞의 문장에도 또한을 넣는다면? 그 효과는 분명하다. 세 문장이 순서와 상관없이 동일한 말을 하고 있다는 뜻을 갖는다. 결과적으로 세 문장은 "또한"이라는 단어로 엮여 있으며, 그렇게 세 문장이 별개의 문장이 아니라 하나의 문장으로서 어떤 의미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그럼 대체 무슨 뜻인데?

세 문장이 사실은 한 문장이고,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논어 학이 편은 다음과 같이 풀어서 쓸 수 있다.

"배워서 적절한 때에 익히면 즐거운데, 그걸 같이 하는 친구가 먼 데서 찾아온다고 하니까 기쁘고, 남들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그 학습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초연히 지내면 그게 군자 아닐까?"

논어 행동강령 완성이다. 공자가 강조한 인의 완성은 고립된 채 책에 파묻힌 선비가 아니라, 사회적 이해관계를 떠나 뜻을 같이 하는 학습자 집단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논어 학이편 마지막 문장의 끝 구절, "그게 군자 아닐런가?"라는 질문은 공자 사상의 입문자에게는 "너도 한번 안 해 볼래?"라는 권유이면서, 추종자에게는 "군자가 되고 싶다면 멈추지 말고 하라"는 강력한 명령으로 작용한다.

이 논어 사상의 힘은 강력했다. 치열하게 학습하는 지식인 집단은 권력을 이미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는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그 두려움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 중국대륙을 처음 통일했던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다.

최초의 통일왕조였던 진나라의 초대 황제는 공부하는 놈들이 눈엣가시였고, 사상을 통제해야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책을 불태우고(焚書) 유학자들을 생매장(坑儒)시켰다. 사실 이 사상통제 정책에서 독특한 지점은 사람을 죽인 것뿐만이 아니라 책을 태웠다(焚書) 는 점이다. 정치적 적대세력이 위험한 것은, 그들의 조직뿐 아니라 그들의 지식 때문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계속)